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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연구·교육·임상명맥 단절 위기 진료과들, 활로 방안은?
상급종병 구조전환 지원사업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의료개혁 일환으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 모두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원사업 첫 시행 이후 6개월 간 중증수술, 중증응급, 소아 등 적합질환 환자 비중이 2024년 1월 44.8%에서 2025년 1월 52%로 7.2%p 증가했다. 비상진료기간 감소했던 진료량은 지원사업 시작 이후 중증수술, 입원 등 중증 중심으로 역량이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또 비중증 환자는 종합병원을 이용하면서 종합병원 이상의 전체 환자 수는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 됐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이 구조전환을 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지원하기 위해 연간 3.3조원 규모의 지원금도 집행하고 있다. 중증수술 및 중환자실 수가 인상을 통해 기능을 강화하고, 일반병상은 5~15% 감축하는 대신 중환자실과 권역응급, 외상센터 병상, 긴급치료병상, 뇌졸중집중치료실 등 정책적 목적의 병상은 확충할 수 있도록 병상 구조전환 지원금도 지급했다.
정부는 종합의료기관으로서 상급종합병원의 역량이 저하되지 않도록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의 전문진료질병군을 보완하는 한편, 전문진료질병군 보완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의료계 등 현장의견을 수렴해 보완지표를 넓혀 나갈 계획이다. 특히 전문과목별 전문진료질병군의 비중, 환자의 연령이나 기저질환 등 환자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상급종합병원의 적절 질환이 합리적으로 조정될 수 있도록 추진할 방침이다.
이미 수련 교육과 연구기능 축소
학문적 퇴보 우려
하지만 이런 정부의 기조에도 불구하고 의료현장은 중증, 응급, 희귀질환을 진료하는 바이탈과 그 외 비바이탈 진료과 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가정의학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재활의학과 등 대표적인 비바이탈 진료과는 관련 학회 중심으로 정부를 향해 대응 방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근골격계 질환을 다루는 정형외과는 이번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 추진으로 인해 타격을 받은 대표적 진료과로 꼽히고 있다.
대한정형외과학회 한승범 이사장(고려대 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은 정형외과를 비롯한 비바이탈 진료과의 축소는 결국 국민 건강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이사장은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의 큰 방향 중 상급종합병원에 대한 주요 정책 방향은 필수·중증·응급 및 희귀질환 치료 중심으로 구조를 전환하는 것”이라며 “전체적인 방향성은 동의하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이사장은 “정형외과는 근골격계 질환을 다루는 대표 과목이며, 고령화와 함께 환자수요가 꾸준히 증가해 상급종합병원에 꼭 필요한 진료과”라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의정갈등 이후 대학병원에서 정형외과 진료 대기와 수술 대기가 너무 길어져 적시에 진료를 받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이 됐다”고 진단했다.
그 이유에 대해 정형외과는 비필수 의료로 분류돼 있고, 저수가로 인해 수술을 시행할 때마다 적자가 발생해 상급종합병원이 수술실과 병상을 축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급종합병원 경영진은 상종 지정을 위한 기준인 적합질환 비율을 맞추기 위해 중증도 관리를 목숨처럼 중요시 하고 있다. 상급종병의 전문진료군 비율은 50%를 상회하지만 정형외과는 20%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정형외과가 비필수의료로 분류돼 정책 가산 수가 지원 등에서 소외되고 있어 저수가 늪에서 벗어나지 못해 진료와 수술을 할수록 적자가 발생하는 진료과로 낙인 찍히고 있다.
한 이사장은 “필수의료에 적용되는 가산 수가를 적용받지 못해 수술을 할수록 손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상급종병에서 정형외과 수술의 손익율은 -20%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상급종병에서 정형외과 수술실과 병실을 줄인 상태다. 수익도 안되고 중증도도 낮추는 천덕꾸러기 진료과목이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한정형외과학회는 상급종병 구조전환 지원사업 추진 선결 과제로 중증도 재분류가 이뤄져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의 의료행위 중증도분류세트(Current Procedural Tterminology, CPT) 수준으로 중증도 분류가 세분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매년 CPT를 개정하고 있으며, 근골격계 관련 중증의료행위만 2000여개로 분류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200여개로 분류돼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척추 수술 대비 난이도 높은 척추 재수술 행위가 분류돼 있지 않아 수가 역시 적용되지 않고 있다.
또 미국은 의사의 행위에 대한 수가를 설정하는 기준으로 의사의 노동력과 간호사 등 지원인력 인건비 및 재료비용, 법률 리스크 비용까지 포함해 설정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은 인공관절 치환술과 중증 수술 비용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학회의 주장이다.
한 이사장은 “정형외과 행위의 중증도 재분류를 통한 세분화로 1000개 행위 중 현행 20% 수준의 중증도를 더 확대해야 한다”며 “현재 지방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들이 줄줄이 이탈하고 있다. 교수들이 그만두고, 전공의가 들어오지 않으면 지방 정형외과 진료는 붕괴돼 결국 지방 대학병원에서는 정형외과 진료를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의 비필수 진료에 대한 종합병원 혹은 전문병원 이용 확대 정책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는 정형외과를 찾는 환자 중 대다수 고령 환자는 내과적으로 심각한 질환을 동반해 중환자실과 다학제 진료가 이뤄져야하므로 상급종병 진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런 환자들은 상급종병에서 한 분야만 깊이 연구한 의료진의 전문적 진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이사장은 상급종병에서 입지가 줄어든 비필수 진료과들은 전공의 수련교육 역시 붕괴될 것으로 우려했다.
한 이사장은 “상급종병에서 수술 및 외래가 축소될 경우 교육 수련의 질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며 “교육 수련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소규모 병원에서 전공의 교육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또 “상급종병에서 진료하던 정형외과 교수들이 이탈하면서 연구 역량 역시 무너질 것”이라며 “그동안 한국의 정형외과 연구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임상현장의 교수들 노력 덕분이다. 실제로 2025년 대한정형외과학회 국제학술대회 발표 연제 수가 2024년 대비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의정 갈등 이후 붕괴되고 있는 상급종합병원 정형외과의 현실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한 한 이사장은 정형외과 분야의 학문적 퇴보와 함께 국민들이 최고의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고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출처 : 메디칼업저버(https://www.monews.co.kr)
